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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자료수집

16세기 동아시아(한,중,일)의 식탁

요약

국가 1일  식문화 주식 비고
조선 2kg 1일 2식, 부유층 1일 3식 쌀, 소금 임진왜란 전 후 차이가 큼
700g 1일 2식. 부유층 1일 1식(폭식) 북부는 면, 남부는 쌀, 식초 서구 식재료
2.4kg 미만 1일 2식. 다이묘는 혼젠요리, 카이세키 쌀, 미소 남만무역의 영향이 빠르게 퍼짐.

 

16세기 특징

  후반 포르투갈이 남만무역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이 벵갈만 근처 동남아부터 명나라, 일본, 조선 순으로 전해진다. 빈부격차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미식'이 사회교류 활동의 도구로 적극 이용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조선

  • 건강한 식단
    15세기 이양법으로 농업생산량이 증가했는데, 15세기 중반부터 소빙기로 인해 가뭄, 홍수, 역병이 잦았다.
    15세기에는 '식료찬요'라는 식이요법 책도 집필되었는데, 16세기 자료에서는 식사와 건강을 밀접하세 연관짓는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
  • 식사량
    임진왜란때 기록한 쇄미록에는 "성인 남자는 1끼에 7홉이 넘는 양의 쌀을 먹는다"고 적혀있다. 당시 1홉은 현재의 1홉보다 3배 크기이니 1홉에 물 60ml, 쌀 50g, 밥 100g 이다. 얼추 200g 햇반으로 네 개(뜯었으면 먹어야지!) 분량이다. 
  • 주요 특징
    0첩반상의 개념(3,5,7,9)은 기록상 조선 후기에 발견된다. 16세기에는 명명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의례음식의 규범이 정립되었다.
    숭유주의자와 숭유억불정崇儒排佛(정책) 전 까지, 탁주가 갈증해소에 지나치게 소비되었다.

 

  • 건강한 식단
    당시에도 건강을 위해 식이요법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가 쪽에서는 채식을 권했지만 공통적으로 폭식은 피하라고 했다. 목마르면 물을 마시되 술은 너무 자주 마시지 말고, 점심 이후에는 금식하라고 했다.
  • 조선전기 이극돈은 상소에 '풍년이면 음식을 아끼지 않고, 중국인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번에 먹어치우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라고 했다.
  • 주요 특징
    명나라의 식문화가 화려해지기 시작한 중후반기(16세기) 서양으로부터 다양한 옥수수, 토마토, 땅콩, 고구마, 사탕수수 식재료가 들어오면서부터다. 음식과 술은 단순 식사가 아니라 사교활동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요식업도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북부와 남부의 경제상황과 식생활도 차이가 뚜렷했다. 북부에서는 대부분의 재료(과일 포함) 익혀 먹는데, 남부는 과일, 수산물 등을 세심하게 가공해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부는 주료 면을, 남부는 밥을 주식으로 했다고 한다.

 

  • 건강한 식단
    전국시대 의사 마나세 도산(曲直瀬道三)이 집필한 의서 延寿撮要는 환자를 다루는 책이지만, 올바른식생활에 대한 지침이 있었다.
    이를 요약하자면, 배부르지 않도록 먹고 식사에서 소금, 생선, 가금류 섭취를 줄여야 하며 술은 심적으로 힘들때만 먹어야 한다고 했다.
  • 식사량
    대체로 1일 2식 이었지만 식사량은 상당했다고 한다. 당시 히라이즈미지의 하쿠야마신사 장부에 따르면 쌀이 매일 1인당 1升(되) 지급되었다고한다. 소량의 미소(된장)와 소금, 차도 함께 지급되었는데, 술은 쌀과 비슷하게 지급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1升은 10合(홉, 컵)이고, 1合은 물 180ml, 쌀 150g이다. 하지만 당시 1홉의 크기는 지금보다 70~80% 정도 작았다고 추정되기에 다시 계산하면 쌀과 술의 양은 1.2kg 정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보통 밥은 쌀의 두 배 이상으로 무게가 늘어나므로 하루에 2.4kg의 밥이 지급된 것이다. 200g짜리 햇반이 12개인데, 아무리 지금보다 거친 잡곡이었고 하루종일 말을 탄다고해도 그걸 설마 하루에 다 먹지는 않았겠지 싶다. 
  • 주요 특징
    전국시대에 혼젠요리와 카이세키가 등장했다. 가마쿠라 시대에 퍼졌던 사찰음식이 더욱 발전했다.
    육식금지령이 잘 지켜지고 있었지만(멧돼지, 사슴 등의 사냥은 금지사항이 아니었다.) 내항자를 위해 소, 돼지, 빵이 제공되었다. 무역을통해 호박, 수박, 옥수수, 감자 카스테라 등이 전해졌고 간모도키, 덴푸라도 이때 등장한다.
    무로마치 시대에 箱寿司 등장. 이때까지는 생선들을 발효해 먹었다.
    무사와 일반서민의 식생활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한다.

     
 

류큐

 

참고: 나무위키. 한민족의 식사량, 초밥 역사, 식료찬요 

 

참고: 이윤석(2024). 조선시대에 소고기 요리가 발달했던 이유. 월간중앙

참고: 만쭈리(2013). 조선시대 식생활. 네이버 블로그 

참고: 腾讯文化(2021). 明代饮食文化中“开门七件事”中的民俗智慧. kaiwind

참고: 探照灯好书(2023). 明朝人是怎么吃的. QQNews 腾讯网

참고: 佐藤 圭(2018). 文献に見る戦国大名と「食」. 飛騨市の文化財

참고: 刀剣 ワールド. 戦国時代の食生活. 刀剣 ワールド

참고:  戦国BANASHI(2023). 戦国時代の農民の食事とは?庶民の主な食事・生活と武将の食事も紹介. 戦国BAN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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